< 수상 >



조촐하면서도 의미 깊었던

동창회

정순자(65년 음대 성악과 졸업)

사노라면 참 놀랍고 훌륭한 사람들이 많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그들에 대한 존경심과 고마운 마음으로 며칠을 생각하면서 기쁨을 가라앉히지 못하곤 한다. 이번 필라델피아 우리 여고 동창회 발기에 축하도 하고 동창들 열성에 보답도 해야할 것 같아 귀하신(?) 몸이 참석하게됐다. 고 3때 짝궁이었고 또 우리들이 존경하고 우러러보았던 선생님과 몰래몰래(미안) 연애하고 결혼까지 해서 우리들을 놀라게 했던 정자, 또 못 말리는 열성파 춘실이 또한 알게 모르게 협조하고 있었고, 우리의 여걸 성악가 경자의 합창지휘로 성대히 막을 열었던 필라델피아 동창회, 남편님들까지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시는 외조(外助) 또한 상당급이었다.

조촐하면서도 의미가 깊었던 동창회, 그런데 나는 거기에서 특별한 것을 발견했다. 나는 나눌 줄 아는 친구들을 보았다. 그저 잠깐 만나 옛것을 회상하며 회포를 풀자는 그런 모임이 아닌 나눔이 있었다. 바쁜 생활 중 같이 모여 합창 연습하는, 노래하며 찬양하는 생활의 나눔, 회장 정자의 동창회 준비완료 외에도 무궁화와 간나꽃 묘목, 백 그루나 되는 뿌리를 손수 뽑아 버켓에 담고 박스에 담아 들고 와서 동창 모두들 집에 심으라고 선물하는 나눔, 간 연구를 하셔서 많은 한국교포와 조국을 위해서, 특히 한국사람들에게 많다는 간 질환을 안타깝게 여기셔서 무료접종에 봉사하고 계셨던 분으로 널리 알려진 한혜원 선배님. 한 선배님께서 오페라를 좋아하신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그날 있었던 특별강연에서 간염에 대한 무식을 일깨워주시고 공부하게 하셨던 것도 우리들에게는 큰 나눔이었지만 선배님께서 좋아하시는 오페라…..사람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그저 자기만 즐기고 그것으로 만족하는 게 고작인 것으로 생각했건만 그날 나는 그 선배님으로부터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진정한 나눔의 마음을 보았다. 베르디의 "나부코"란 오페라의 그 감명 깊은 합창곡과 아리아들을 뽑아서 카세트를 만들어 우리 모두에게 나누어주시는 그런 분에게 나는 어떻게 감사를 해야할 지 몰라서 모두들 나 같은 생각이시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며칠동안 자동차 속에서 카세트를 듣고 다니다가 나중에는 그 오페라 전곡 CD까지 하나 샀다. 그날 모였을 때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를 해설해주시는 동안 벅찬 감격에 눈물까지 꿀꺽 삼키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하시던 한 선배님의 모습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메마른 마음에 음악을 듣도록 나누어주신 마음, 섭섭하게 끝나 가는 동창모임에서 나는 오늘 정말 잘 왔다 생각하며 무궁화와 간나꽃 묘목을 받아 안고 나왔다.

춘실이 차에 실려온 나는 춘실이를 놓칠세라 얼른 쫓아 나왔건만 아차 하는 사이에 사라져버린 황당함이라니. 요즈음 건망증 증세에 쓸쓸해지는 내 자신이 아니었더라면 내 자신이 이렇게 버리고 갈 존재밖에 안되었던가 슬퍼질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왕따 당한 처량한 신세에 무궁화, 간나 한 아름까지 가엾어지고 있었다. 제일 중요한 남편만 싣고 가던 춘실이, "아이고 순자" 하고 놀라서 다시 돌아와 준 그 친구가 구세주였고 건망증 외에도 잠까지 나를 애먹인다는 신세타령에 티베트 버섯 요양법을 논아 주었다. 나를 데려가고 데려오고 버섯 요양법까지 나누어준 친구, 건망증까지도 나눌 줄 아는 친구, 나는 그날 이렇게 훌륭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나누어 사는 마음을 보았다.

이제 간나 꽃이 빨갛게 피면 우리 뜰 안은 화려하게 멋질 것이고 동네도 환해지면서 정자에게 다시 고마운 마음을 보낼 수 있고 무궁화가 꽃피울 때면 나라 생각을 하게되는 애국자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니 또 감사해야겠다. 이렇게 나눌 줄 아는 동창회가 길이길이 발전하기를 기원하며 훌륭한 동창들을 만날 수 있었던 시간을 다시 한번 고맙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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