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곳의 소꿉친구를 찾아서

 

유진순 (심리, 57)

 

지난 가을 10월 둘째 주에 우리 부부는 오래간만에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마침 곱게 물든 단풍이 아름다워 바람 따라 나들이를 나서고 싶은 계절이기도 하였거니와 불란서의 우아한 멋을 지닌 도시로 알려진 New Orleans에 호기심을 느끼며 둘이서 홀가분하게 길을 나선 셈이다. 별로 계획하지 않은 갑작스런 여정이었으나, New Orleans에서 머지 않은 마을 Metairie에 있는 어릴 쩍 소꼽친구도 만나볼 수 있다는 속셈으로 흐뭇하였다.

 

Chicago 부근의 번잡한 도로를 벗어나고, 인디아나 주 65번 도로에 들어서니 교통량도 느긋해진다. 켄터키 주를 통과하며, 과히 머지 않은 곳에 위치한 Mammoth Cave National Park에도 들려 본다. 오후 2시경에 Park에 도착하여 3시부터 5시까지 안내자가 인도하는 동굴 관광에 참여한다. 산 속 컴컴한 동굴에서 안내자 없이는 한 발자국도 옮길 용기 없을 험한 바위로 둘려 쌓인 오솔길과 깊고 가파른 바위 언덕에 장치한 거의 300여 개의 좁은 계단을 조심조심 내려가고 바위 생김 따라서 꼬불꼬불 돌기도 하고 때로는 삐죽 솟아 나온 바위를 피하려고 허리를 꾸부리며 자칫 잘못하면 뾰족한 바위에 부딪치기도 하면서 바위산 속 자연 그대로 험한 동굴에 들어갔다.

 

등산모를 쓰고 있었기에 이마에 조그만 상처만 생긴 것을 다행스럽게 여기며 바위 모퉁이에 부디쳐서 상처 입은 이마를 쓰다듬는 모습도 보인다. 어린아이들 동화 속의 모험 장면을 연상시키는 어두컴컴한 굴속에서 "와우, 저 높이 바위틈을 보세요. 어머나, 저 아래 깊은 골짜기를 보세요.  하며 신기해하는 감탄사도 심심찮게 들린다. 때로는 위로 끝이 안보이도록 높은 공간이 보이는가 하면, 때로는 아래로도 어둡고 무한히 깊은 골짜기가 보여 다리가 휘청함을 느끼게 한다. 감탄사에 감탄사를 연발하며 거의 두 시간을 굴속에서 헤맸는가 본다. 그 중에도 천태만상의 아름답고 신기한 모습으로 주홍색에서 회색으로 번지면서 천장에서 흐르는 고드름 석주와 기둥을 이루는 水成岩의 장관은 두 시간 동굴여정의 상승 점을 이루는 신비스런 광경이었다.

 

안내서에는 동굴이 생기게된 재미있는 설명이 있었다. 원래 이 동굴은 바위 밑으로 흐르는 물길이었으나,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 빗물의 산성이 편마암 틈으로 스며들어 편마암을 차츰 녹이고 더 깊은 지하층의 물길까지 구멍이 뚫리면서 물길은 하류로 합류되고 그 결과로 상층에는 마른 동굴이 생긴 것이라고 한다.

 

동굴 탐지에서 밖에 나와보니 오후 다섯 시, 해는 아직도 높이 떠있고 무성한 나무로 둘러싸인 산 경치는 약동하는 활기를 느끼게 했다. 우리는 심호흡으로 신선한 냄새를 마음껏 들여 마시고,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나려던 원래의 계획을 변경하곤 상쾌한 날씨를 즐기며 해가 있는 동안 다시 New Orleans를 향하여 달렸다.

 

머지 않아 켄터키주를 떠나고 테네시주를 달리며 도로 주변에 설치된 여행 안내소도 들려 최근에 출판된 지도와 호텔 안내서를 구했다. 지도를 보고 연구하며 해가 질 무렵 호텔을 정하고 우리는 푸근히 잘 쉬었다. 우리가 묵은 곳은 내쉬빌에서 머지 않은 변두리 마을로 우리 여정의 절반은 온 듯하여 만족히 여기며 다음 날 아침 일찌감치 내쉬빌을 잠깐 들려보고 우리의 여정을 계속했다.

 

앨라배마 주의 65번 도로를 달리고 버밍함에선 59번 도로로 접어들며 미시시피주로 남향을 계속한다. 붉고 노란 단풍으로 단장한 낙엽수들은 가도 가도 한결같이 아름다운 풍경을 전개한다. 앨라배마 주 넓은 들에는 흰 솜으로 덮인 목화밭과 울굿불굿 코스모스 꽃 나부끼는 들판도 낭만적인 감상에 잠기게 하는 아름다운 절경의 연속이었다. 루이지애나 주에 들어서며 도로 이름은 10번 선으로 바뀌고 연이어 Lake Pontchartrain을 횡단하는 길고 긴 다리는 곧장 New Orleans 동쪽으로 들어서게 한다.

 

New Orleans를 고속도로로 통과하며 서쪽으로 연접한 마을인 머텔(Metairie)의 지도와 상세한 설명을 적어둔 쪽지를 비교하며 우리는 호숫가 아담한 동네에 있는 친구 유순이의 집까지 잘 찾아갔다. 차를 세우기도 전에 우리의 도착을 알아차리고 유순이가 서둘러 나오며 두 팔 벌이고 맞아준다. 우리는 마치 어린 소녀 친구로서 다시 만나는 양 얼싸안고 반겼다. 어릴 때의 소꿉 친구란 신비하여 수십 년을 보지도 못하고 지났건만 마치 어제 본 친구를 다시 보는 듯 어린애들처럼 즐거웠다.

 

정원의 야자수는 남쪽의 고유한 낭만적 멋을 풍기고, 장미도 곱게 피어있고 뒷마당 자그마한 연못에는 붕어도 헤엄치고 울긋불긋 고운 꽃밭 사이엔 세 마리 개가 뛰며 놀고 있었다. 피아노를 전공한 유순이는 제자의 지도를 마치고 New Orleans의 명물인 여러 가지 해물로 조리된 Gumbo로 저녁상을 보기 좋게 차렸다. 게도 있고 조개도 들어있는 New Orleans의 명물을 우리는 참으로 맛있게 즐겼다. 저녁상을 거두자 유순이의 남편되시는 이 목사님의 안내를 따라 무척 궁금하고 호기심 가득하였던 유명한 거리 French Quarter에 산보 나갔다. 정성스런 안내로 여러 거리를 산보하고 그 고장의 명물인 고운 설탕가루 뿌린 베네(beignet)와 커피도 즐겨보고 무척 아름다운 New Orleans의 첫 저녁을 멋있게 보냈다.

 

우리가 자랄 때, 유순이 외할머니는 우리 어머니가 무척 존경하시는 이웃 어른이시었다. 유순이 외할머니를 비롯하여 유순이 집과 우리 집 모두 정동교회 교인이었고, 별식이 있을 때는 서로 접시 들고 다니며 나누어 먹었고, 여러 면에서 우리는 단순한 이웃이라기보다도 문자 그대로 이웃 사촌이었다. 유순이와 나는 여름엔 봉선화를 따서, 백반을 섞어 이겨놓고, 저녁이면 다시 만나 손가락에 꽁꽁 묶으면서 빨간 손톱으로 물들이고, 겨울 방학이면 소꿉놀이와 숨바꼭질로 온 집안을 뛰어 다니면서 함께 놀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릴 쩍 동심의 추억이 마치 어제의 일같이 되살아난다.

 

유순이가 정동교회에서 결혼 할 때 그의 결혼식을 지켜보았고, 그 해에 나는 스위스로 유학을 떠나면서 우리는 38년이란 오랜 세월을 서로 소식을 모르면서 지났다. 근년에 서울에 갔을 때 비로소 유순의 소재를 분명히 알게 되었고, 우리의 재회는 서로 남편을 동반한 노부부들의 첫 대면이 되었다. 유순이 부부는 두 아들을 잘 키워 결혼시키고, 최근에 손녀 아기를 본 행복한 조부모가 되었으며, 우리도 남매를 기르면서 중년기의 기나 긴 동안을 전혀 보지도 못하고 세월은 흘러갔다.

 

주저하는 우리를 그의 다정하고 인품 있는 솜씨로 비어있는 아이들 방에 머물도록 강력히 권고해 주었다. 다음 날 아침 이틀 간 여로의 긴장을 풀고 편안한 밤잠에서 느긋하게 일어나니 이 목사께서는 마당에서 화초 손질 일과를 시작하였고 유순이는 아침 식탁을 완벽하게 차려 놓았다. 우리는 서로 칠순이 몇 해 남지 않았건만 유순이는 마치 이팔청춘 젊은이처럼 정성을 다 해준다. 나의 소꿉 친구는 목사 부인으로서 수양된 인내를 지닌 하나님의 가르침을 수행하는 성숙한 인품의 소유자인 아름다운 인품이었다. 서먹하고도 정다운 우리의 재회는 특이하고도 참으로 귀한 시간의 연속이었다.

 

처음에는 설거지도 못하게 "저리 가, 저리 가  하며 혼자 하는 것이 좋다고 나의 도움을 거절하던 과정을 거쳐, 어느덧 우리는 오래간만에 만남으로 인한 반가우면서도 서먹한 장막을 물리치고, "이거 해줄래 , "저거 할래 , "이거 해줘, 내가 저거 할게  하며 반찬을 그릇에 담고 상을 함께 차리는 등 옛날 우리 소꼽 시절을 계속하는 듯 했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자랄 때의 친구들과 멀리 떨어져서 지내온 나에게 옛 그대로의 친밀한 친구를 느낄 수 있는 경험은 참으로 특이하고 아름다운 보배였다. 표정, 눈 길, 음성만 들어도 속속들이 이해소통이 가능한 친구를 나는 다시 찾았다. 이와 같이 의사소통이 원만한 친구들과 가까이 지났더라면 더욱 뜻 있고 보람있는 인생을 엮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쉽고 서글픈 생각조차 스친다.

 

4년 전에 New Orleans의 감리교회 목사로서 은퇴하신 이 목사님과 식탁에서 잠시 나눈 좌담은 무척 아늑한 지적인 대화였으며, 자주 계속하여 지적으로 영적으로 더 자랄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함이 아쉽게 느껴진다. 우리의 재회는 철없을 때 같이 자란, 형제나 다름없는 친구를 오래간 만에 만난다는 반가움과 더불어 서로 낯 설은 남편들을 동반하는 멋쩍음도 있었으나, 유순이 부부의 섬세한 호의는 우리의 마음을 포근하고 안일하게 풀어주었다.

 

다음 날은 넓고 넓은 Pontchartrain 호숫가를 달리기도 하고, 공원에선 차를 세우고 산책도하고, 그 고장 특이한 각가지 명물들과 지상에 있는 돌무덤의 특이한 유래도 들으며 New Orleans를 누비었다. 그곳은 습지대이므로 돌로 만든 큰 무덤을 지상에 놓는 고유한 풍속이 있다. 때 마침 작업으로 열려있는 한 돌무덤 안에 여러 개의 관이 저장된 것을 드려다 볼 수도 있었다.

 

당일 바다에서 수확한 어물들을 판매하는 어시장도 찾아보고 우리 친구는 큼직한 게를 열댓 마리나 사들고 집에 왔다. 어제 저녁에 gumbo 속의 게를 해물이 흔한 함흥에서 자란 우리 남편이 능숙하게 손질하며 즐기는 재주를 보곤 이 목사께서 궤 사러 가자고 제의한 결과였다. 집에 오자마자 찜통에서 익혀진 게는 우리 남편 뿐 아니라 나에게도 기묘한 진미였다. 주일 오후면 교인들이 함께 가까운 바다에 낚시도 잘 다니고 소풍가면 게 잡는 재미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사흘째는 쟈마이카 쪽에서 오는 태풍 영향으로 잔득 흐렸으나 비는 나리지 않으므로 바다 구경을 나가기로 했다. 미국의 남쪽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Gulf of Mexico가 시원스럽게도 널리 전개된다. 모래사장을 한참 거닐고 바닷물에 손도 담가보고 처음으로 보는 남쪽 바다를 마냥 즐겼다. 우리의 방문을 환영이라도 하려는 듯 때마침 구름사이로 틈을 낸 푸른 하늘조각에선 화사한 햇빛을 비쳐주어 우리는 환성으로 햇빛을 반기었다.

 

New Orleans는 재즈의 탄생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재즈 공원에선 마침 그 날 트럼펫 연주가인 Doc Paulin과 그의 육 남매 자녀들로 구성된 밴드가 Louis Armstrong Buddy Petit Jazz로 잘 알려진 곡들을 잭슨 스퀘어 거리에서 연주하는 날이었다. 아름다운 잭슨 스퀘어를 배경으로, 때로는 관중과 가벼운 농담도 주고받으며 흥미롭게 진행하는 그 밴드는 자연스런 인간미를 풍기어 나의 기대를 월등하게 능가했다. 때로는 개개인의 구수한 노래와 흥겨운 트럼펫 독주도 섞으면서 다양한 연주로 연속되는 흐뭇하고도 흥겨운 재즈는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07년에 출생한 Doc Paulin은 초창기에 버디 쁘 과 함께 밴드연주를 한 적도 있는 지금은 노령인 그러기에 더욱 풍자스런 훌륭한 연주가였다.

 

다복한 나날을 마련해준 친구 부부의 정성을 고맙게 여기며, 꿈같이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그들이 우리를 찾아주어 서로 못보고 지나간 세월을 앞으로 보충할 수 있는 시간이 반드시 연장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며, 다음날 아침 우리는 여로에 올랐다. 좀더 가까이 있으면서 앞으로는 노년기 친구로서도 서로 부축하며 보다 유의미한 나날을 엮을 수 있었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쉬어가는 코너 >

 

건망

Sara: "Honey, Would you please get me a bowl of Ice Cream?"

Bob: "Sure, 1 will."

Sara: "Bob, please write it down."

Bob: "Don't worry. 1 won't forget it."

Sara: "Bob, you will have to write it down."

Bob: "Don't Worry, 1 will remember it."

Bob went into the kitchen and didn't come back for  some time. When he finally returned to the family room, he had  bacon, eggs and a cup of coffee on a  tray.

Sara looked at the tray and said: "Honey, you forgot toa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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