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수엘라와 이화 동창들

 

김 영희(약학, '68)

 

베네수엘라는 남미의 가장 북쪽 해안지역에 자리 잡고있으며, 북쪽은 카리브 해안을 바라보며 해안 쪽에는 많은 섬들이 군도를 이루고 있고 서쪽은 콜롬비아와 접하고, 동남쪽은 기아나와, 남쪽은 따가운 열대 아마존 정글 넘어서 브라질을 경계로 하고 있다. 위도는 북위 10도로 적도 지방에 위치하고 있다. 기후는 일반 적으로 더운 지방이나, 고산 지역에 자리잡고 있는 수도 카라카스는 일년 사철의 기온이 65도에서 85도 사이로 습기도 없고 아주 상쾌한 기후이다. 해변가는 항상 따뜻하고 고산지역은 눈이 쌓여있어 같은 시기라도 일년 사철을 다 경험할 수 있는 곳이 베네수엘라다.

콜럼버스가 이 나라를 발견하고서 지상의 천국이라고 불렀다고 하니 기후만을 감탄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처음 이곳에 착륙한 사람들은 이곳이 베니스를 연상시킨다 하여 이름을 베네수엘라(Venezuela - Little Venice)라고 지었다고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말할 것도 없고 미인들이 많은 나라이니 미스 유니버스와 미스 월드가 가장 많이 배출 된 곳이 이 나라이다. 콜럼버스가 남미 대륙을 발견한 이래로 유럽인들이 정착하여 살면서 노예도 데려오고 많은 혼혈아도 나와 세계에서 피부 빛깔의 종류가 가장 많은 나라로 알려져 있다. 

면적은 한반도의 4배반, 인구는 2 4백만이다. 1521년에 스페인에서 이주하기 시작한 후 유럽인들이 1567에 카라카스 도시를 세우고 1576년에 수도로 정하였다. 1914년 이후 마라카이보에서 기름을 발견, 세계 제 5대 석유생산국으로 부상되었으며 현재 미국의 석유 소모량의 13%가 베네수엘라에서 수입되고 있다. 이는 베네수엘라 생산량의 약 64%에 해당된다. 1984년 석유가격의 급등으로 나라의 경제에 많은 영향을 미쳐, 다른 사업에도 힘을 기우려 석유에만 의존하던 수출을 다양화하였다. 최근 현 정권에 대한 데모가 격화되기 전 까지는 남미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알려져 있었다.

이 나라의 국부로 국민의 사랑을 오랫동안 받아온 시몬 볼리바 장군의 지휘 하에 스페인에서 독립국으로서 발족하여 독재정권을 유지하다가, 1958년 이래로 민주주의로 전향, 대통령을 직선제로 선출하기 시작하였다. 여러 차례 정치적인 진통을 겪어가며 민주국가로 발전해 오던 중 1998년에 휴고 샤베즈가 나라의 풍부한 석유로 번 돈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는 약속으로 선거인들의 58%의 지지를 받고 당선되었다. 이 나라의 부(Wealth) 90% 10%의 국민이 차지하고 있다니 샤베즈의 선거 공약이 인기를 끌은 것이다. 집권하자 샤베즈 대통령은 큐바의 캐스트로 사회주의 노선을 도입하면서 대다수의 가난한 국민들을 배경으로 장기집정을 꿈꾸기 시작하자 이 나라의 경제권을 쥐고 있는 석유회사와 주요기업체들이 합심하여 국민 총 파업을 하고 샤베즈 대통령의 신임을 묻는 국민 투표를 요구하고 나와 이 나라는 또다시 정치적인 소용 도리 속에 휩쓸려 들어가게 되고 경제적인 파탄이 크게 일어난 것이다.

우리 일행이 이곳 카라카스를 찾은 금년 일월은 샤베스 정권과 이 정권을 불신임하는 야당과의 사이가 극도로 악화되어 파업소동으로 교통은 물론이고 사회 전반이 혼돈 속에 마비되어 있는 상황 이였다. 무사한 여행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도 없지 않았지만 오랜만에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설레임과 언제나 빈틈없이 매사를 잘 처리하는 친구를 믿는 마음에서 계획한데로 여행길을 떠났는데 친구 이 현자와 그 부군의 따뜻한 우정과 깊은 배려 때문에 우리는 예상하지 않았던 많은 소중한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다.

수도 카라카스는 한쪽에는 높고 준엄한 아빌라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높고 낮은 산봉우리가 도시 속에 여기저기 솟아 있는 입체적인 도시다. 저녁에 비행기에서 내리면 크리스탈 불빛으로 장식한 크나큰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는 것처럼 아름답다. 이곳 자연의 아름다움을 짧은 글이나 화폭 속에 담기에는 심히 미흡함을 느낀다. 불란서 남쪽의 푸로방(Province) 지역의 눈부신 태양과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든 고갱이 카리브 해 지역으로 옮겨온 것이 친구 고흐와의 언쟁 때문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된다. 이 곳 해안의 설탕같이 부드러운 백사장과 해안 가에 늘어선 야자수 나무사이를 걷는 정취, 색안경이 바닷물 속에 씻겨 내려가는 줄도 모르고 수없이 잡히는 바지락조개를 주어면서 태고적으로 돌아간 듯한 조용하고도 방대한 바다의 따뜻한 공기를 들어 마시다가, 해질 무렵 새들이 모여든다는 작은 섬에 들렸을 때는 자연의 아름다움의 극치를 경험하는 경탄을 금할 수 없었다. 새빨간 또 새하얀 Caiman Crocodylus라는 이름을 가진 두루미 같이 생긴 60cm나 몸이긴 새들이 수천 마리가 한꺼번에 순식간에 날라 와서 한 섬을 완전히 덮어 버리면서 그 섬을 장식하는 것이었다. 자연의 아름다움과 묘미에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으며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재현할 수 없는 신의 조화와 섭리의 신비로움을 목격하였다. 신선한 해산물, 입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녹을 것 같이 달고 향긋한 색색가지의 다양한 종류의 과일들 그리고 그 싱싱하고 풍성한 채소들! 아침식탁에 올려 나오는 과일접시는 마티스(Mattise)의 화폭을 압도하는 총 자연 색의 아름다운 예술품과 같았다.

하루는 우리 일행이 준비된 도시락과 물병을 어깨에 매고 등산길에 올랐다. 2시간정도 올라가면 그 중턱에 개울이 흐르고 조금 더 안으로 들어가면 사랑방 만한 반반한 바위가 있는데 3면은 바위와 숲으로 아늑하게 가리워 있고 한 면은 환히 틔워 시내의 전경이 아름답게 눈 아래로 펼쳐있다. 여기서는 낮잠을 잘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고 시정을 푸는 문학인도 될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자연 속의 서재와도 같은 곳이라고 할까?! 돗자리를 펴고 여섯명이 편안하게 앉아서 가지고 온 Back Pack을 풀고 나누어먹는 도시락은 꿀맛 같았다. 이 나라의 총파업 때문에 박물관들이 문을 닫아서 등산길에 올랐는데 여행 중 가장 아름답게 보낸 귀중한 한 시간이었다. 여기는 그저 우연히 찾은 곳은 아니다. 평소에 등산을 좋아하고 건강하고 근면한 생활을 즐기는 친구는 그 부군과 자주 등산을 하면서 이 높은 아빌라 산을 사방 답사하다 발견한 이곳은 자연 속의 특별한 안식처였다.

중남미 여러 국가는 한국과 중요한 경제적인 유대를 가지고 있다. 한국 무역 흑자의 큰 부분이 중남미 지역에서 유래되는데 베네수엘라로 가는 연간 수출액은 약 5억불에 이른다고 한다. 그러기에 이곳에는 비교적 많은 외무부 직원들이 파견되어 있으며 정치외교직무의 중요한 부분이 경제 통상직무라 보겠다. 이곳 카라카스의 한국 대사관 직원들은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인근 6 국가를 총괄하고 있다. 이곳에서 한국의 외교와 통상의 직무를 두 어깨에 짊어지고 동분서주하면서 제일두각을 내고있는 한국인 세분을 만났는데 그분들은 다 이화 졸업생의 부군들이었다. 김 영길 대사의 부인 이 현자(영문, 68)동문, 김 병남 참사의 부인 윤 금(가정, 80)동문, 그리고 김 두환 사장의 부인 이 혜옥(불문, 82)동문이 우리 이화의 졸업생들이었으며 이분들은 하나같이 남편의 반려자로 또 그 업무와 사업의 파트너로 대한민국의 일등 일꾼으로 실력과 인격을 갖춘 이화인 들이었다. 

이곳에 업무를 받고 오는 외교관들은 남미의 전문가들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외교관들은 그렇다 하겠으나 그 부인까지 단단히 준비를 하고 실력을 길러온 이 현자 대사 부인은 이곳에 부임하기 전에 남미를 공부하고 서반아어를 수학하여 교사자격증을 딸 정도의 실력을 길러 와서 대사관저 안 밖에서 일하는 작지 않은 수의 주민들과 서반아어를 원주민처럼 유창하게 구사하면서 한국을 외국에 잘 알리려고 애쓰는 남편의 외교활동에 무보수의 대한민국의 참 일꾼으로 소임을 다 하면서 본인 또한 이곳생활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교민은 약 200명 정도의 소수임에 놀랐다. 몇 명 안 되는 작은 수의 교민이었지만 여기서 눈부신 선교활동을 하고있었다. 사업으로 성공한 김 두환씨 부부와 부모님들이 중심으로 헌납한 기금으로 교회를 짓고 그 교회를 중심으로 이곳 한인들은 서로 도우고 우애 있게 지나면서 아마존 지역에 이미 교회를 4개나 세워서 원주민들을 위한 선교활동에 헌신하고 있었다. 대사관의 김 병남 참사부부도 외교일 뿐만 아니라 선교일 에도 열심히 전염하면서 외부에 있는 한국인들이 관심을 가지고 이곳한인들과 선교활동을 합세하여 같이 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 형제부부 4사람은 이 현자동문과 부군의 따뜻한 배려와 후대를 받으면서 이곳에 와서 훌륭한 이화인 들까지 만났으니 관광, 등산, 골프 하면서 눈 깜짝 하는 사이에 즐거운 열흘이 지나가 버렸다. 수은주가 영하를 가르치는 꽁꽁 얼은 북반구를 향해서 발길을 돌리면서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아쉽게 헤어져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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