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눈 참전용사의 '5달러 사랑'

조 소희

작년에 미국 오하이오주의 교환학교에서 국제 학생들과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을 때 일이다. 우리는 버팔로의 한 목사님 댁에 머무르며 교회에서 일요예배를 드린 후 여러 미국인들과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나이가 지긋하신 백발의 미국 할아버지께서 내게 악수를 청하며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어보았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그분은 갑자기 반가운 표정으로 돋보기를 끼시며 자기의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분은 6ยท25 참전용사였던 것이다.

할아버지는 한참 자신의 무용담을 이야기하곤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셨다. 한국의 "굶주리던 아이들이 아른거린다"는 것이었다. "초콜릿 주세요. 사탕 하나만 주세요!" 하던 아이들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어렸을 적 할머니 할아버지께나 듣던 그 옛날 이야기가 낮선 백발의 미국 노인의 주름진 입에서 흘러나왔을 때,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졌다. 순간 할아버지는 주섬주섬 지갑을 꺼내시더니 내 손에 5달러를 쥐어주셨다. 한국에 돌아가거든 꼭 아이들에게 사탕이며 초콜릿 등을 사주라는 것이었다. 노인의 손이 민망하지 않게 5달러를 받아든 나는 할아버지와 손을 맞잡으며, 꼭 좋은 일에 쓰겠다고 확답을 드렸다. 할아버지는 정말 고맙다며, 굶주리는 한국 아이들을 걱정하셨다. 나는 이제 한국도 경제 강국이며, 굶주리는 아이들도 거의 없을 만큼 성장했다고 말씀 드리며 할아버지를 안심시키려 애썼다. 할아버지는 그래도 믿기지 않는 듯, 한국을 걱정하고 한국인들을 걱정했다. 며칠 전 한국에 돌아온 나는 다이어리 속에 끼워두었던 5달러를 발견하곤, 그 백발 할아버지의 한국에 대한 애정 어린 관심이 다시 한번 느껴졌다.

월드컵 응원 열기 속에 일부에서 반미감정이 나도는 것을 보며, 미국에서 만난 그 할아버지의 '5달러의 사랑'이 생각나 마음 한 구석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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